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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안랩을 떠났나

2014년 1월 17일, 많은 회한을 남긴, 안랩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

안랩, 나의 영광이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힌 곳.

이제 떠난지 3년이 넘었으니, 나의 안랩이 지금의 안랩과 같을지 모르겠다. 나는 안랩을 많이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물론 안랩이 좋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일하기 좋은 회사였기 때문에 그러했다.

원한다면 어디에나 기여할 수 있었고, 나의 결과물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급에 개의치 않고 대화할 수 있는 회사, 직급을 권위삼아 찍어누르지 않는 회사, 개인 역량을 존중하는 회사. 적어도 내겐 그랬다. 3년이란 시간은 이미 충분히 많은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므로 나의 생각은 이미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겠지만, 지금껏 남은 인상이 이렇다면 안랩은 나에게 소중한 의미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면에서 좋은 회사란 없겠지만, 그동안 겪어본 회사 중에서는 안랩이 단연코 최고다.

그럼에도, 안랩을 떠났다. 아니, 떠나야 했다.

퇴사하기 전 일년 간, 많은 것을 잃었다. 국문 테크니컬 라이팅 파트의 리더로서, 기술문서 품질 개선을 위해 세웠던 로드맵은, 조직개편의 후폭풍으로 무력화되었다. 한 때 위기에 처했던 월급루팡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팀 파괴자(팀장은 팀을 파괴했다)’의 연공서열우대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나는 월급루팡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SOS를 요청한 막내를 감싸지 못했고, 막내는 마음을 닫아버렸다.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고, 선뜻 연락을 하지 못하겠다. 어쩌겠나. 내가 부덕한 처사지…

일 욕심에 시작된 야근은 중독이 되었고, 사내 고객이랄 수 있는 동료들에게 매뉴얼을 잘 썼다는 평을 들을 때 즈음 찾아온 번아웃(burn-out).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이 사실을 인사팀장에게 알렸지만, 개인의 탓으로만 생각하는 인사팀장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순진했지…

‘팀 파괴자’는 팀원들을 이간질했다. 2013년 가을에서 2014년 봄 사이, 팀의 1/4은 회사를 떠났다. 나는 외로웠고, 어디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없었다. 4년 10개월의 시간을 잊고, 나도 떠나기로 했다. 같은날, 오랫동안 연구소장으로 계셨던 조시행 전무님도 안랩을 떠났다.

이 모든 일들이 마흔 즈음해서 찾아왔다. 그 뒤로도, 안랩을 생각하면 화병이 도졌다. 스페인 광장이 미치도록 그리웠고, 동료들이 보고 싶었고, 판교의 공기가 그리웠다. 쌀쌀한 겨울 바람과 미끄러운 육교가, 야근 전에 맥주를 곁들여 먹던 돈까스도…

그래서 미친 짓을 했다. 2015년 5월, 제품기획자 채용공고가 났길래, 그냥, 지원했다. 붙으리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력서와 함께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 왜 퇴사했는지 써내려갔다. 그리고 예상했듯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그 후로 채용 프로세스가 외주(outsourcing)로 바뀌었다. 설마 나 때문인 건 아니겠지만, 정말 그러한 것같은 기분이 든다.

안 팀장님, 그 때 조직 개편을 왜 그렇게 했어요? 팀 내 상황을 모르셨죠?

아뭏튼, 그 이후로 채용공고가 나는 것을 알아도 이력서를 낼 생각이 없다. 안랩과 나의 관계는 밀당이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연인 사이로, 그리고 서로 익숙해지다가 지루해지고, 다투고 헤어지게된 이야기와 다른게 없어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궁금하다. 안랩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동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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