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

사범님은 갱년기가 틀림없다. 불과 몇 주전에는 권투 배우러 갔다가 한 시간 운동하는 시간 동안 30분 넘게 잔소리를 들었다. 이해가지 않는 소리도 좀 하셨는데, 그날은 좀 욱 하셨던 듯. 뭐… 그러실 수도 있지 하며 넘기려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마음에 부담이 남아 체육관에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가야지 하고 눈을 감고 들어가니 반갑게 맞아주시네.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아저씨. 사범님이 “아 옛날이여”라든가,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말은 그림” 하고 부르는 노래를 듣다보면 괜히 젊은 시절 사범님의 모습이 그려지며 왠지 애잔해지는 것이다…

시설이 낡아서 들어서기만 하면 ‘응답하라 1988’같은 느낌이 물씬나는 체육관.  주변에 깨끗한 복싱 클럽이 있는데도 굳이 여기를 찾았던 이유를 떠올려본다. 이런 낡은 곳에 미련이 남는 것을 보면, 낡아가는 나의 육체는 아직 쓸만하다는 동병상련인 듯 싶네.

나도 갱년기인가? -_-;a

새해 맞이 개꿈

벽두부터 꾼 꿈이 심상찮다. 꿈을 잘 꾸지 않는데, 비교적 생생하기 남아있기도하고, 꿈이 내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욕망과 의식을 보여주는 창이라면,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다.

높은 곳에서 내려온다. 가끔씩 꾸는 꿈에서 자주 겪는 한 토막이기는 하지만, 연이어 꾼 꿈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듯싶다. 몸 기댈곳 없이 한 발짝만 겨우 디딜 수 있는 창공에서, 나홀로 내려와야만 한다. 겨우 손가락 몇개 비집어 넣을 수 있는 곳에 매달리거나, 잘못 디디면 그냥 떨어져 죽을 상황인 곳에서 저 멀리 뛰어서 건너야 한다거나, 무너져 내리는 비좁은 계단 위에서 다른 곳으로 뛰어넘어야만 살  수 있다거나… 그렇지만 결코 꿈을 깰 때까지 그 바닥에 닿아보지 못한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공포와 절망을 겪는 꿈.

그리고, 다 허물어져가는 움막에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내가 있다. 그 중에 숨은 현인이 있어, 나에게 꾸지람을 하고는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잊고, 그 공동체(?)에 남기로 한다. 어찌되었든, 그 허름한 곳에 허술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 보다 행복해 보이고, 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남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마음은 홀가분해지고, 내 마음의 절반은 체념, 또 절반은 기쁨이다. 갑자기 난데 없이 (지금보다 젊은) 심상정 의원이 나타났다. (난 정의당원도 아닌데?) 난 무슨 알지도 못할 노래를 지었고, 사람들은 노래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 노랫말이 중요했던 듯한데.

그리고, 예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돌아오는 길에 금은방이 있고, 난 아무렇지 않게 한 때 고등학교 후배에게 줄 금반지를 산다. 옆에 예진이가 있지만 별로 의식되지 않았다. 동시에 아내에게 사주지도 않은 것을 내가 왜 후배에게 사주는지 갸우뚱해진다. 반지를 사들고 아내를 만난다.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그 반지의 진짜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왜 반지를 사는 걸까?

대체로 꿈은 이랬다. 높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다리는 힘이 들어가 있고, 기분참 묘하네. 꿈을 잘 꾸지도 않는데, 깨어 일어나니 개꿈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난, 지금 내 삶에서 탈출을 바라는 것일까?

나는 왜 안랩을 떠났나

아뭏튼, 그 이후로 채용공고가 나는 것을 알아도 이력서를 낼 생각이 없다. 안랩과 나의 관계는 밀당이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연인 사이로, 그리고 서로 익숙해지다가 지루해지고, 다투고 헤어지게된 이야기와 다른게 없어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궁금하다. 안랩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동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꾸고 싶지 않은 꿈

꾸고 싶지 않은 꿈을 꾸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기로 하는 꿈. 꿈이라서, 꿈속에 나오신 어머니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머니보다 더 건강해보였다. 하지만, 어머니를 괴롭게 하면서 수명을 연장시켜드리기는 못할 짓이므로,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쪽을 택했다.

꿈 속의 나는 차마 이렇게 보내드리기 싫어 번민하였다.
그리하여, 치료 방향을 가족들과 상의하지 않고 번복하였다.

세상의 모든 자녀가 그렇겠지…

죽음을 알지 못하면, 인생을 모르는 것이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인생이란, 허세다.
우린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이며,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와 말해주는 이는 없다.

Memento Mori / Remember Your Mortality

어머니께서 아프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무디어졌다.
이번이 마지막이리라는 고비를 몇 번이고 넘기신 어머니는 병약한 몸으로 1970년대 동대문 시장에서 미싱공으로 일하셨다(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던 그곳, 동대문 의류시장이다). 그곳에서 공장 주인이 준 약을 먹어가며 밤을 새고, 먼지구덩이에서 뒹구셨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는 늘 아프셨다. 아마 그전에도 많이 아프셨을테지…

아직 사순절기는 오지 않았지만, 재의 수요일 예식문이 문득 떠오른다.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아직은 아니리라 믿는다. 하지만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죽음을 생각하기에 오히려 삶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끝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