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인격 살인”을 살인과 동일하게 여긴다. 새롭게 와닿는구나.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재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예수는 ‘바보’, 혹은 ‘멍청이’라는 (원어로는 어느 정도 표현일까?) 욕에 초점을 맞춘게 아니라, 그렇게 욕하는 사람의 마음에 초점을 맞춘다. 최고 의회는 당시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을 의미한다. 최고 의회는 예수가 신성을 모독했다며 유대인들이 죽이기로 결의한 곳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사법 기관쯤 된다. 즉, 사형을 언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 정부로부터 사형 집행을 허락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빌라도에게 넘겨져, 반란죄목으로 기소된다.) 그런 최고 의회에 넘겨질 것이라는 예수의 표현은, 인격을 짖밟는 사람의 마음만으로도 나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23-26절은 인격 살인, 혹은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려면 먼저 화해해야 함을 알려준다. 화해는 잘못을 깨달은 사람이 먼저 청한다. 원망을 키우는 불편한 관계 속에서 하느님과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예수는 먼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사람답게, 내 잘못을 헤아려 내가 해를 끼친 사람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한다. 예배는 그 다음이다.

만약, 상대방이 화해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의 말씀에서 고소한자는 무고히 송사를 일삼는 이가 아니라 원망으로 고소한 자일진데, 예수는 원망의 대가를 감당하라고 한다. 책임을 끝까지 지라고 한다.

예수의 말씀은, 나에게 타인의 인격을 모독할 자격이 없음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신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다고, 사람답게 살라고 예수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