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배적인 자리를 얻은 이데올로기는 굳이 자신이 무엇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자리를 확고히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일상적인 평범함, 그 속에 뭍어있는 폭력을 잘 보지 못하는 이유.

… 한 걸음 물러나서 보게되면, 폭력과 싸우거나 관용을 장려하는 우리의 그 노력을 지탱하는 폭력을 식별할 수 있다.

… 하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조건에 내재되어 있는 ‘초객관적 ultra-objective’ 혹은 구조적 폭력으로서, 이는 노숙인에서 실업자 등과 같이 배제됐거나 있으나 마나한 사람들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 다른 하나는 민족/종교적인, 한 마디로 인종주의적인, 새로이 떠오르는 ‘근본주의자’들이 행하는 ‘초주관적 ultra-subjective’ 폭력이다.

… 어떤 특징, 태도, 삶의 규범들은 이제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중립적이고,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고, 당연하며,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라할 때, 우리는 이런 배경에서 돌출해 나와 눈에 띄는 것을 지칭한다. 가령 극단적인 종교적 열정이나 특정 정치 성향에 대한 헌신적인 지지 등이 그렇다. 이에 대한 헤겔철학의 입장은 바로 어떤 특징이 중화되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때 가장 순수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데올로기가 드러나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변증법에서 말하는 ‘대립물의 일치’이다.

… “나는 안다, 하지만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알지만,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들을 완전히 떠맡기를 거부한다. 그래야만 마치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으니까.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정일권 옮김, 도서출판 난장이,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