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Before Pilate, First Interview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 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한 18:33-37)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 대축일이다. 교회력에서 한 해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해 왕이신 그리스도 대축일로 끝난다. 교회력에 따라 읽는 오늘의 성서정과는 제1독서로 다니 7:9-14 또는 사무하 23:1-7을, 제2독서로 묵시 1:4하-8, 복음서로 요한 18:33-37이다. 예수를 “왕이신 그리스도”라 선포하는 대축일이지만, 오늘 읽는 복음서는 예수가 왕을 참칭했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죽게 됨을 보여준다.

십자가형은 정치범에게 내려지는 형벌이었다. 예수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의 권력에 기대어, 혹은 종교의 권력에 힘입어 혜택을 누리던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의 말과 행동이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리라 여겼다. 대다수 사람들은 예수가 그들에게 (정치적인) 구세주가 되기를 바랬다. 상황이 그러하니 유다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반목하던 지도자들은 하나가 되어 예수의 죽음을 원했다. 로마는 종교적인 이유로 사형하지 못하도록 금지했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를 “유다인의 왕”이라 스스로 칭했다는 죄목으로 로마 총독에게 고소한다. 로마 황제가 파견한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이에 대해 심문한 내용이 오늘의 복음서이다.

예수의 십자가형은 정치 및 경제 권력과 종교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고, 빵만 있으면 모든 것을 잊는 대중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정치와 경제를 장악한 지배계층인 사제들과 사두가이파, 로마의 허수아비 권력들, 종교적 노력에 열심을 기울이고 명망을 누렸으나 현실에 눈감음으로써 착취체제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 바리사이파,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생각해야 하는 로마 총독의 부조리가 드러난 사건이다. 이스가리옷 유다는 어쩌면, 예수를 한계 상황에 밀어넣어 어쩔 수 없는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내려 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예수에게 바랬으나, 무기력한 예수에게 분노하고 등 돌린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이스가리옷 유다와 일반 대중은 그저 거짓된 선동1에 놀아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엄청난 시간의 격차가 있지만,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있고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도 우리가 등돌린 예수와 같은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복음서는 유다 청년 예수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복음서는 그렇게 죽임당한 청년이 부활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네가 옳다”하는 인정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 복음서가 전하고자 하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예수처럼 사는 삶이 옳다”는 것이다. 그를 살리는 기적으로써 하느님이 증명하셨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다.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예수를 왕이라 부르는 고백은 우리가 그를 모함하여 부르는 이름이거나, 정말로 왕으로 여기는 이름이거나… 둘 중 하나 밖에 없다. 적당한 타협은 없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이 고백 사이에서 살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 정치 권력 가까이 계시는 장로님들은… 말을 말자

PS. 제3차 노예전쟁으로 알려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서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 포로들을 십자가형에 처했고, 이 전쟁은 사로잡힌 6천명의 검투사들의 십자가형으로 끝났다. 예수는 명백하게 정치적인 이유로 죽은 것이다.


  1. 우리 사회에서 “선동”이란 용어는 오용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피해 유족들에게 정치적 선동하지 말라는 말이 그런 것들이다. 오히려 그와 같은 주장이 선동이다.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