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바라마지 않는 일임에도 쉽지 않았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전환점을 돌아 전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는 별 의미가 없는 것같고, 한 해를 지나며 든 생각만 적어본다.

보안 솔루션 회사에서 보안 운영으로

보안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일반 IT 서비스 회사의 보안 운영자로 자리를 바꾸었다. 개발 조직에서 CC 인증 업무를 하다가 개발 환경의 보안 환경을 담당하는 역할로, 개발 조직의 보안 환경 구축 업무를 하다가 전사 보안 운영으로 조금씩 자리가 바뀌어 왔으니 뜬금없이 포지션이 바뀐 건 아니다.

보안 솔루션 회사의 연구원, 혹은 관리자에서 서비스 회사의 보안을 운영하는 자리로 오길 잘 했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더불어 전통적인 보안이 얼마나 낡은 것인지 실감하며 살고 있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일하는 건 꽤 재미있고, 벅찬 일이고 하고, 낯선 모험이기도 하다. 이런 IT 환경에서는 경계 방어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보안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런 보안은 쓸모 없고, 모든 것의 걸림돌이 된다. 전통적인 보안 정책은 근래에 보편화된 기술과 계속 충돌하고, 그럴 때마다 전통적인 보안은 별 쓸모가 없다.

보안이 내재화된 기술, 서비스가 준비되지 않으면 말짱 꽝인 IT 세상에서 코딩을 모르고 보안 솔루션에만 의존하는 보안 엔지니어가 설 자리는 없다. 거꾸로 보안을 모르는 개발도 위험천만하기는 마찬가지.

채 일년이 되지 않은 새로운 업무 환경에서 많은 도전을 받는다. 잘 견뎌내고, 잘 배우고, 잘 성장해서 열매를 나누어주자. 꼭 그런 사람이 되자.

회사의 HR 담당자가 하는 말이 있는데, “좋은 동료가 최상의 복지다.” 격하게 공감한다.

시니어 엔지니어의 자격

공학(engineering)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가 더 중요한 자리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영역이라면, 공학은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므로 시니어 엔지니어라면 문제해결 능력이 남들보다 나아야 한다. 나는 무엇에 대해 시니어 엔지니어라 할 수 있을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다른 엔지니어와 협력해 문제를 풀어나가거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역량아닐까? 혹여나, 그런 자리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매니저의 역할이 아닐까?

지난 해에 끊임 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위험 요소는 “관계”였다. 본인이야 내 표현이 섭섭할지 모르지만, “모자라는” 부하직원을 잘 컨트롤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나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면서 이미 사고는 났고, 다른 팀에서, 혹은 상사가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볼 때 얼마나 당혹스럽던가. 평등한 관계, 소통을 지향하는 태도가 업무의 수직 관계와 같을 수 없다.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 때에는 내가 아꼈던 부하직원도, 나도 회사를 떠나는 길을 택했다. 그 때와 지금이 중첩되면 그 가운데에는 결단이 부족한 내가 있지 아니했던가? 배려한다는 이유로 일을 너무 가볍게 주었거나, 혹은 방치하지는 않았나?

이제는 신데렐라가 되지 말자.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냉정해야 할 땐 냉정하게, 따끔한 충고나 질책을 하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이다. 외동 아들을 감싸고 들어 결국 그의 인생을 망치는 부모처럼 되지 말자.

신앙이 설 자리

신앙인으로 산다는 건 나의 전 인생이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 믿는다. 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엔지니어로… 종종 내가 하는 일이 신앙에 부합하는 것일까 고민한다. 아직까지는 분명하지 않다.

2016년 10월 즈음 공동번역 성서를 PDF로 변환한 이후 이렇다 할 작업을 하지 못했다. 한달에 많게는 네 번 정도 PDF 파일을 요청받는 연락을 받곤 한다. 걔중에는 오랫동안 냉담 중인 천주교인도 있고, 공동번역 성서를 구하고 싶지만 구하기 쉽지 않아 오는 연락이 많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중국에 사는 조선족에게 받은 메일이었다. 메일 통해 다운로드 링크를 알려주면 대부분은 고맙다는 회신을 해주었다. 이렇게 찾는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성공회를 알고, 찾아와 교인이 된 청년들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성공회 강남교회처럼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자극받아 홈페이지를 열게된 교회도 있다. 꾸준히 전례독서를 게시하다보니 일년이 넘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본문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더불어 우리의 삶과 생각을 담은 교인들의 글들을 꾸준히 게시했으면 좋겠는데, 다들 너무 바쁘신 듯…

나를 변화시킨 것들

무엇보다 복싱! 요즘은 일이 바빠서, 저녁에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처음처럼 자주 가지는 못해도 꾸준히 하고 있다. 올해는 정말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일찌감치 아웃되어 서울을 떠났을 것만 같다. (그러잖아도 내가 힘들어하는 기색이면 아내님께서 내려가 살자는데…)

운동을 하고부터 병원을 찾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내님도 좋아하심.

기억에 남는 일들

이직하기 전에 급하게 가족들과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건이,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보는 예진이, 사랑하는 나의 은미, 이렇게 다녀온 오키나와. 앞으로도 일년에 한 번은 해외에 나가보면 좋겠다.

올해는 어떻게

그래서 올해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학습하며, 자신을 성찰하며 살 것이다.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건강 잃지 말고, 잘 해내자.